미국 실리콘밸리와 월가에 이어 소매·제조업계에까지 감원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고강도 긴축 타격으로 인한 침체 공포 확산에 줄줄이 사세 축소에 돌입한 것이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이 기업소매팀 내에서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이라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감원 규모는 확인되지 않고 있고 소규모일 가능성이 높지만 지난해 빅테크 중 유일하게 감원 칼바람을 피한 애플의 이같은 움직임은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에 직면한 기업의 경영 환경 변화를 시사한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애플의 감원은 실적 악화에 따른 것이다. 미 시가총액 1위 빅테크 애플은 아이폰 판매 부진으로 4년 만에 분기 매출이 감소하는 역성장 쇼크를 기록했다. 애플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한 1172억달러로, 시장 예상치(1211억달러)를 밑돌았다. 아이폰 매출은 8%나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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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도 감원 절차에 돌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미국 내 사무실을 일시적으로 폐쇄하고, 전사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상자에 대한 비대면 해고 통보를 위한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맥도날드는 "이번 한 주는 우리 조직 전체와 직원들의 거취와 관련 중요한 결정 사항을 전달할 것"이라며 해고 대상자에게 개별 통지가 갈 것임을 시사했다. 맥도날드가 이번 감원에서 얼마나 많은 인원을 해고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맥도날드가 세계 각국에서 고용한 인력은 약 15만명(2월 말 기준)으로, 이 중 70%가량이 미국 외 지역에 있다.
맥도날드는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료비 상승분을 만회하면서 지난 분기 매출과 이익 모두 성장세를 보였으나, 금리 인상 등 거시경제 악화와 이익률 하락 압력에 대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지난 1월 정리해고 방침을 공식화한 맥도날드는 미국 소비자들이 매장 방문을 줄이고 있고, 일부 매장에서는 객단가가 낮아지고 있다며 매출 부진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WSJ은 지난해 빅테크 등 기술 기업에서 시작된 해고 물결이 소매업체와 제조업체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경기 침체 전망에 아마존·알파벳·메타 등 빅테크와 월가 대형 투자은행, 월마트·포드자동차·갭 등 제조·유통업체들이 줄줄이 사세를 줄여왔다.
미 제조업 위축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이날 미 공급관리협회(ISM)는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6.3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예상치(47.5)보다 크게 하락한 것으로, 2020년 5월 이후 3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외신들은 신규 주문이 급감하면서 3월 미국 제조업 활동이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고금리로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면서 기업 활동도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S&P 글로벌의 미국 3월 제조업 PMI 확정치는 49.2를 기록했다. 3월 PMI는 전월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업황 위축 국면에 머물렀다.
유가 급등 가능성도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며 제조업 경기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전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회원국들이 오는 5월부터 하루 116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발표했다. 러시아가 일일 50만배럴의 감산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한 것을 포함하면 전체 감산 규모는 일일 160만 배럴 이상이 될 전망이다.
유가 급등은 최근 둔화 조짐을 보여온 인플레이션을 다시 끌어올려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 경로 강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제조·소매업 등 경기 전반의 침체를 언급하긴 성급하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FHN 파이낸셜의 크리스 로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이 여전히 후퇴하고 있지만, 서비스 부문은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포워드본드의 크리스토퍼 루프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경제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통계는 침체의 설득력 있는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