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기업)'으로 떠올랐던 미국 기술 스타트업들이 올해 고금리로 타격을 입으며 대거 폐업하고 있다. 다급하게 비용 절감에 나섰지만, 사태 해결을 하지 못하고 좀비 기업으로 주저앉거나 회사 문을 닫고 남은 투자금을 겨우 돌려주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6주 사이에 사무실 공유 업체 위워크를 비롯해 헬스케어 스타트업 올리브 AI, 화물 스타트업인 콘보이, 주택 건설 스타트업인 비브 등이 잇따라 파산 신청을 하거나 문을 닫았다고 보도했다. 이들 기업이 받은 투자 금액만 위워크 110억달러(약 14조5000억원)를 포함해 총 134억달러에 달한다.
이 외에도 지난 5월에는 2억26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한 금융 기술 스타트업 플라스틱이, 지난달에는 5000만달러를 투자받은 부동산 스타트업 제우스리빙 등이 파산했다. 미국 화상회의 솔루션 스타트업 호핀은 한때 기업 가치가 76억달러까지 치솟았으나 올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지난 8월 주요 사업을 1500만달러에 매각했다.
기술 스타트업이 최근 2년 사이 비용을 절감하며 회사가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이제는 시간도 자금도 동나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벤처캐피털(VC)들은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기보다는 당장 살릴 가치가 있는지 등을 보고 투자 기업에 폐업하거나 보유 자산을 매각하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타트업 시장 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에만 벤처캐피털(VC)의 지원을 받은 미국 스타트업 중 파산을 신청한 기업이 3200개에 달했다. 이 회사들에 쏟아진 투자금은 272억달러인데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이 데이터에는 위워크처럼 파산 사실이 공개되거나 매각된 미국 화상회의 솔루션 스타트업 호핀 등 대규모 실패 사례가 일부 제외돼 실제 파산한 기술 스타트업과 타격을 입은 투자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 카르타는 자사 플랫폼에서 최소 1000만 달러를 모집한 스타트업 중 87개가 올해 10월 현재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전체 숫자의 두 배다. 피터 월커 카르타 인사이트 담당자는 "올해가 스타트업에는 최소 10년 내에 최악의 해"라고 평가했다.
앞서 2012년부터 2022년 사이 미국 민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8배 증가해 3440억달러에 달했다. 초저금리 환경이 투자 규모를 키운 데다 소셜 미디어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스타트업이 대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있어 VC가 성장세를 보여왔다.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민간 유니콘 기업의 수는 수십 개에서 1000개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긱워크, 메타버스, 마이크로모빌리티, 암호화폐 등 검증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한 차세대 스타트업이 막대한 광고 수익을 내는 페이스북이나 구글만큼 성장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NYT는 "일부 회사들은 현금이 바닥나기 전에 문을 닫고 남은 돈을 투자자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했다"면서 "그 외의 기업들은 '좀비 모드'에 갇혀서 살아남아 있지만, 성장은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이러한 업계의 암울한 상황은 인공지능(AI)에 초점을 맞춘 스타트업들이 붐을 일으키면서 다소 가려진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기 단계 VC 업체인 프리스타일 캐피탈의 제니 레프코트 투자자는 "업계에서 앞으로 더 많은 실패 소식이 들릴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