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영을 위협하는 요인에 대해 한국은 경제성장률의 하락을, 일본과 중국은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을 꼽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등 ‘두 개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 경영자들도 에너지·원자재값 상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성장률 하락 문제는 중국 경영자들도 위기의식이 컸으며,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본은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고충으로 털어놓았다.
매일경제신문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중국 환구시보와 함께 3개국 경영자 275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주요 경영위험을 묻는 항목(복수 응답)에 한국 경영자의 40.6%는 ‘경제성장률의 저하’를 꼽았다. 이는 중국에서도 2순위(24.0%)로 꼽혔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1.4%로 예상됐다. 이는 30년째 장기 저성장을 기록 중인 일본의 2.0%보다 낮은 숫자다. 25년 만에 한일 성장률이 역전되는 상황을 체감하는 국내 경영자들은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었다. 중국 역시 성장이 정점에 달했다는 의미의 ‘피크 차이나(Pesk China)’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성장률 둔화에 대한 경계감이 높다.
감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주요국 통화긴축에 따른 금리인상으로 투자자금 조달에 큰 부담을 느꼈던 국내 주요 기업 경영자들이 올해는 대외위험이 여전한 가운데 국내경제 활력마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라며 “올해 내수가 어려운 가운데 투자도 상반기에는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에너지·원자재 값 불안은 작년에도 중국과 일본의 경영자들이 비중 있게 꼽았던 경영 위험 요인이었다. 지난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있었지만 올해 가자지구 전쟁이 추가됐고, 최근에는 예멘까지 중동 위기가 전이되면서 기업들의 고심은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대내외적 악재 때문에 부정적 전망이 많았다. 올해 경영환경영을 묻는 질문에 한국 경영자의 33.7%는 ‘약간 악화된다“, 2%는 ’매우 악화된다‘고 답하는 등 부정적인 전망이 35.7%에 달했다. 좋아질 것이란 응답도 35.6%나 나왔지만 중국·일본과 온도차가 컸다.
일본은 ’약간 좋아진다‘가 56.7%, ’매우 좋아진다‘가 1.5%가 나오는 등 전반적인 경기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중국 또한 ’매우 좋아진다‘고 응답한 경영자가 9%에 달하는 등 3분의 2 수준인 67%의 경영자가 올해 경영환경에 대해 희망을 갖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은 지난해 엔저로 인해 주요 기업의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일본 대표 주가 지표인 닛케이지수도 28%나 올랐다”며 “일본은행의 지속적인 양적완화 정책이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는 평가”라고 설명했다.
올해 자국 경제 상황에 대한 질문에 한국은 지난해에 이어 ‘정체’가 41.6%로 가장 많았고, ‘완만하게 성장’은 34.6% 수준을 보였다. 반면 중국은 ‘완만하게 성장’ 51%, ‘빠르게 성장’이 38%를 기록하는 등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컸으며, 일본 또한 ‘완만하게 성장’에 경영자의 80.6%가 응답했다.
이번 설문결과를 보면 한·중·일 경영자들 답변이 모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다만 한국 경영자가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은 낙관적인 분위기가 강한 편이었다.
자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조건으로 경영자들은 국가 차원의 경제 대책에 대한 주문도 쏟아냈다. 복수 응답으로 진행된 설문에서 한국은 1순위로 42.6%의 경영자가 ‘규제 완화’를 꼽았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과 ‘금융시장·외환시장 안정 대책’도 각각 36.6%로 비중 있게 나왔다.
반면 일본은 1순위로 ‘저출산 고령화 대책(37.8%)’을 거론했으며, ‘탈탄소 등 환경대책을 위한 투자 촉진 제도’가 36.5%로 2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경우 31%의 경영자가 ‘감세·재정지출 확대 등 경기 활성화 대책’을 최우선으로 꼽았으며, ‘인플레이션 완화 정책’도 23%로 중요하게 거론됐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한국도 규제시스템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기업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신성장동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기업 규모에 따른 차별적인 규제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사안별로 규제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설비 투자의 경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3국 모두 늘리겠다는 응답이 나왔다. ‘약간 늘린다’와 ‘크게 늘린다’를 합친 응답은 한국 47.5%, 중국 49%, 일본 45%였다. 투자를 늘리는 지역(복수 응답)에 대한 질문에서 한국은 미국(37.6%)과 국내(34.6%)가 높게 나왔고, 동남아(20.8%) 비중도 높았다.
일본도 국내(21.6%)가 가장 높게 나온 가운데 미국과 동남아가 각각 10.8%를 기록하는 등 한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중국은 러시아와 국내, 미국, 동남아 등의 응답이 비슷한 비중으로 나왔다.
설비 투자 가운데 친환경 투자를 ‘10% 이상 늘리겠다’는 응답은 중국이 77%로 압도적이었고, 한국(66.3%)과 일본(12.5%) 순이였다. 일본의 경우 현재 친환경 투자를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 없다’는 응답이 80%로 주류를 이뤘다.
디지털 분야 투자에서도 ‘10% 이상 늘리겠다’는 응답이 중국이 79%로 가장 높았으며, 한국(65.3%)과 일본(26.3%)이 뒤를 이었다. 역시 일본은 현재 투자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의미의 ‘변화 없다’ 응답이 64.3%로 가장 높았다.